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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

이중섭(1916~1956) | 1952~1953년

바닷가의 아이들바닷가의 아이들

바닷가의 아이들바닷가의 아이들

  • 작가이중섭(1916~1956)
  • 제작시기1952~1953년
  • 크기가로 49cm, 세로 32.5cm
  • 기법종이에 연필, 유채
  • 소장처금성문화재단
  • 고유번호타042
  • 바닷가에서 자연과 어울려 발가벗고 천진하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지만 1.4평의 작은 방에서 작은 게를 잡아 먹으며 가족 모두 모여서 복닥복닥 살았던 그 시절이 이중섭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보이며, 그 행복함이 그림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이중섭의 회화에는 야수파와 표현주의의 피가 흐르지만 작품의 본질은 한국적 정서이다. 어린이들이 뒤엉켜 놀고 있는 이 작품도 전쟁통에 잠시 꿈꾸어 보는 낙원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은 이중섭의 드로잉 솜씨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대표급 작품이다. 그림 속 어린이는 모두 두 아들을 반복해 그린 것으로 이른바 이시동도법(異時同圖法)으로 그렸다.

  • 대향(大鄕) 이중섭은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이희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오산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 당시 미술 교사였던 임용련의 지도를 받으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 미술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독립전과 자유전에 출품하여 신인으로서의 각광을 받았다. 분카학원을 졸업하던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협회전(자유전의 개칭)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43년에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는 태양상을 수상하였다.


    이 무렵 일본인 야마모토[山本方子]와 1945년 원산에서 결혼하여 이 사이에 2남을 두었다. 1946년 원산사범학교에 미술 교사로 봉직하기도 하였다.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친구인 시인 구상의 시집 《응향(凝香)》의 표지화를 그려 두 사람이 같이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나고,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그는 자유를 찾아 원산을 탈출, 부산을 거쳐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생활고로 인해 다시,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 무렵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통영 등지로 전전하였다. 1953년 일본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으나 며칠 만에 다시 귀국하였다.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그의 나이 40세에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화단 활동은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한묵·이봉상 등과 같이 만든 기조전(其潮展)과 신사실파에 일시 참여한 것 외에 통영·서울·대구에서의 개인전이 기록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적 작품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갖가지 회고전과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72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과 화집 발간을 위시하여, 평전(評傳)의 간행, 일대기를 다룬 영화·연극 등이 상연되었으며, 많은 작가론이 발표되었다.


    그가 추구하였던 작품의 소재는 소·닭·어린이[童子]·가족 등이 가장 많다. 불상·풍경 등도 몇 점 전하고 있다. 소재상의 특징은 향토성을 강하게 띠는 요소와 동화적이며 동시에 자전적(自傳的)인 요소이다. <싸우는 소>, <흰소>, <바닷가의 아이들>, <두 어린이와 복숭아>, <움직이는 흰소>, <소와 어린이>, <투계> 등은 향토성을 띄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닭과 가족>, <사내와 아이들>, <길 떠나는 가족>과 그 밖에 수많은 은지화(담뱃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일종의 선각화)들은 자전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박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