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진경산수화를 창안하고 완성시켰다는 겸재 정선의 필세가 잘 나타나는 수작이다. 진경산수와 별개로 중국풍 감상산수화에도 능햇던 겸재의 솜씨도 재확인할 수 있다. 소나무와 계곡 앞쪽의 검은 바위 묘사는 전형적이며, 폭포를 한가롭게 바라보는 선비의 여유로움이 묵직하게 그려진 소나무와 조화를 이룬다.
겸재 정선은 국내의 명승고적을 찾아다니면서 진경적(眞景的)인 사생화를 많이 그려 한국적 산수화풍을 세운 조선 후기 화가이다. 열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노모와 함께 지냈으며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김창집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왕세자를 호위하는 위수부터, 한성부주부, 현감, 현령 등을 지냈다. 정선은 중국의 남종화법(南宗畫法)이나 오파(吳派)와 같은 새로운 산수화 기법을 접하고 당시 유행한 시서화 일체 사상을 중시하던 문인들과 교류하며 교양과 창의력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리하여 일상적 생활과 주변의 소재를 주제로 하는 작품에 도전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 자연을 다루는 데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데, 당시 기행문의 소재였던 금강산, 관동지방의 명승 그리고 서울에서 남한강을 오르내리며 접할 수 있는 명소들과 그가 실제 지방 수령으로 근무하던 여가에 묘사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그 밖에도 자기 집과 가까웠던 서울 장안의 사철의 경치들, 특히 인왕산 동북 일대의 계곡과 산등성이들이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문인지우(文人知友)들과 관련되는 여러 곳의 명소나 특수한 고장들의 자연을 다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사도(故事圖) 같은 중국적 소재도 많이 다루고 있으며, 성리학자들의 고사도 제작에서 그의 관심거리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기법상으로는 전통적 수묵화나 채색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지만 자기 나름의 필묵법(筆墨法)을 개발하였다. 또한 다른 화가들에 비해 다양한 묘사법을 구사하였으며, 어느 특정한 소재나 기법 등에 구애받지 않고 과감하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의 이런 활동은 겸재파 화법(謙齋派畫法)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실경 산수화의 흐름을 주도하며 강희언, 김홍도 등 많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대표작에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 <입암도(立巖圖)>, <금강산만폭동도(金剛山萬瀑洞圖)> 따위가 있으며, 저서에 ≪도설경해(圖說經解)≫가 있다.